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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 현대로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 나가사키.

©World Heritage Nagasaki Churchtrust
Source: ColBase: Integrated Collections Database of the National Institutes for Cultural Heritage, Japan
(https://colbase.nich.go.jp/collection_items/kyuhaku/A136?locale=en)
©World Heritage Nagasaki Churchtrust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 나가사키 항.이곳이 예로부터 서양과 연결되는 항구도시였다고 들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 바닷가에 늘어선 교회와 서양식 건축.

외국인이 살았던 거류지 ‘미나미야마테 히가시야마테’에 서면 바다에서 시작된 ‘나가사키’라는 도시의 역사가 보인다.

16세기 포르투갈 선박의 내항으로 개척된 나가사키는 중국과 서양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다.

카스텔라, 어란, 비드로(유리공예), 당사(중국 사원), 용춤, 서양식 건축, 돌길….

나가사키가 이국의 정서가 넘치는 것은 오래 지속된 해외와의 교류 때문이다.

머나먼 바다를 넘어 나가사키로 온 사람 중에는 기독교를 전하는 선교사도 있었다.

새로운 신을 받아들인 나가사키에는 많은 교회가 세워져 신도들의 경건한 기도가 마을을 감싸 간다.

그러나, 기도의 힘을 두려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반천련(바테렌) 추방령을 발령.
일본 각지에서 오랜 기간 박해와 순교가 반복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나가사키 니시자카의 언덕에서 행해진 공개 처형이다.
외국인 선교사와 일본인 신도 등 모두 26명이 순교했다.

남겨진 신도들은 이 사건 이후 잠복 기리시탄이 되어 25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은밀한 기도를 계속 올리게 된다.

19세기 일본이 문호를 개방하자 나가사키는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했고, 무역 상인 등 외국인이 거주하는 구역으로 거류지 ‘히가시야마테·미나미야마테’가 완성된다.

미나미야마테에서 바다를 마주하는 언덕에 세워진 오우라 천주당은 순교한 26명에게 바치는 ‘일본 26성인 순교자 성당’으로 봉헌되었다.
그리하여 순교지인 니시자카를 향해 건축되었다.

정면에 크게 일본어로 쓰인 ‘천주당’의 글자.
일본인들도 이곳이 ‘신의 집’임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려는 이유.
그것은 ‘나가사키에 남아있는 기리시탄의 후예를 찾는다’는 큰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에 세워진 오우라 천주당은 기적의 순간을 계속 기다렸다.

©World Heritage Nagasaki Church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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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의 기법을 살린 ‘프랑스사’

큰 사명을 간직하고 신도들의 축복을 받은 그 건축의 디자인은 좀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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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라 천주당은 1864년 12월 29일에 준공되었다. 이듬해 1865년 2월 19일에 헌당식이 거행되었다.

정면에 배치된 바로크풍 원형 장미 창문, 삼각 지붕이 있는 고딕풍의 탑옥과 첨탑에서 빛나는 금색 십자가, 건물 지붕은 기와를 올린 순수 일본풍으로, 벽에는 격자 모양으로 회반죽을 올린 ‘나마코 벽’이라는 기법이 채택됐다.

서양과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방식이 어우러진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천주당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모습과 색채를 뽐내어 사람들로부터 ‘프랑스사’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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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라 천주당 헌당식은 포교 활동을 하기 위해 파리 외국 선교회에서 파견된 프랑스인 선교사 지라르 신부, 퓨레 신부, 프티쟝 신부가 담당하였다. 공사를 맡은 사람은 아마쿠사(현재의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의 목수 고야마 히데노신.

대나무와 회반죽 등 일본에서 예로부터 쓰이던 부재와 기법이 사용된 오우라 천주당은 자금은 적었지만, 일본인의 센스가 살아있어 어떤 의미에선 색다른 건축물로 주목을 받았다.

창건 초기에는 작은 예배당이었으나 이후 신도의 증가와 대형 태풍의 영향도 있어 1879년에는 예배당을 둘러싸듯이 대규모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바닥면적도 2배가 되어, 현재와 같은 스마트한 고딕 양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때 정면에 있던 장미 창문은 예배실 오른손 측면 벽에 설치되어 창건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우라 천주당은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도 이겨냈다.
1945년 투하된 원자탄은 순식간에 나가사키 도시를 불태웠다.

교외에 있던 천주당은 화재는 면했지만, 강렬한 폭풍으로 인해 지붕과 정면 대문, 스테인드글라스 등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는 않았다.

오우라 천주당은 25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기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곳으로 박해나 원자탄 투하의 피해를 헤쳐 나가 기도가 계속됐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지켜온 오우라 천주당은 현존하는 일본의 제일 오래된 가톨릭교회로 일본에 전해진 서양식 건축의 서두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1933년 국보에 지정됐다.

기도의 자유를 얻은 하느님의 집

천주당 내부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하늘 높이 펼쳐진 리브 볼트 천장, 실내에 붉은색과 푸른색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

이곳이 신성한 곳임은 한 걸음만 내디디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잘 닦인 장의자에 앉아 손을 모은다.

천장으로 눈을 돌리면 대나무로 곡선을 엮어 낸 아치형 리브 볼트 천장이 펼쳐져 일본인 목수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1879년 대규모 증·개축이 이뤄졌을 때 마련된 6개의 측면 제단에는 프랑스에서 운반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상, 성 요셉상, 베르나르도상 그리고 성 마리아상 등이 안치돼 기도의 자유를 얻은 하느님의 집으로 많은 신도들이 방문했다.

정면에는 장식성이 풍부한 주제단이 있고, ‘십자가의 그리스도’ 상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우리를 반겨준다.

이는 1865년 천주당 헌당을 기념해 프랑스 카르멜 수도원에서 기증한 것이었다.

일본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원자탄의 폭풍으로 심하게 파손되어 현재의 것은 파리의 로제 상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천주당 내부를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1879년 개축 때의 것, 1945년 원자탄으로 크게 훼손되어 전후에 복구된 것, 그리고 1990년의 태풍 피해로 파손되어 그 후 수리된 것이 혼재해 조금씩 색감이나 투명도가 다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을 실감한 후에는 오우라 천주당 아래 잠든 프티쟝 신부를 돌아보고자 한다.

중앙 통로를 따라 주제단 앞까지 가면 우측 벽면에 끼워진 납석판비가 눈에 띈다.

이것은 오우라 천주당의 건조와 기리시탄의 후예를 발견하는 데 목숨을 건 고 프티쟝 신부의 묘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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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온 지 22년, 일본 각지에서 신학생 육성에 힘쓰며 교회당 건립에 전력을 다했던 프티쟝 신부는 가고시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곧바로 나가사키로 되돌아갔으나, 허무하게도 1884년 10월 7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귀천하셨다.

생전의 뜻에 따라 제단 바로 아래에 잠든 신부님은 지금도 조용히 오우라 천주당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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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루어진 신도 발견

왜 프티쟝 신부는 오우라 천주당에 잠들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종교 역사상의 기적이라 불리는 ‘신도 발견’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1865년 2월 19일 헌당식 이후 불과 한 달 뒤인 1865년 3월 17일 정오가 지난 후 많은 참관객에 섞여 있던 우라카미 마을의 기리시탄 중 한 명이 성당 안에서 기도하는 프티쟝 신부에게 다가가 고백한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우라카미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님의 상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드디어 찾은 기리시탄의 후예.
프티쟝 신부는 프랑스에서 옮겨온 성모상으로 이들을 안내하자 우라카미 마을의 기리시탄은 “맞아, 정말 성모 마리아 님이시다! 보세요, 성자 예수님을 품에 안고 계신다”라고 기쁨에 겨워 말했다.

“성모 마리아 님의 상”이라는 말을 들은 프티쟝 신부는 기리시탄의 후예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 순간 가혹한 금교령 하에도 기독교 신앙이 계속 살아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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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가 부재했던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라카미 마을의 기리시탄이 계속해서 믿었던 세 가지 전승이 있었다.

‘7대가 되면 신부가 로마에서 배를 타고 온다’ ‘그 신부는 독신이다’ ‘성모 마리아 님의 상을 가져 온다’. 그 예언은 이 ‘신도 발견’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프티쟝 신부가 본 감동적인 ‘신도 발견’은 우라카미 마을 사람들이 보면 ‘신부와 마리아상의 발견’이었고 잠복 기리시탄이 진심으로 갈망했던 기도의 자유였다.

오우라 천주당에는 ‘신도 발견’을 이야기해 주는 두 개의 마리아상이 있다.

하나는 기적의 만남을 목격한 성모상이자 ‘신도 발견의 마리아상’으로 지금도 안치돼 있다.

다른 하나는 천주당 정면 입구에서 마중해 주는 ‘일본 성모상’이다.

우라카미 마을의 가난한 신도들이 미사 답례로 기부한 많은 돈의 사례금을 사용해 프티쟝 신부가 프랑스에서 들여왔다.

2세기가 넘는 긴 잠복 기간의 기도.

어려운 생활 속에서 남몰래 바라던 가족의 행복.

그리고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살아온 신도들의 삶의 모습.

자애로운 두 마리아상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오우라 천주당의 가상 투어

기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교차한다

신도가 발견된 지 150년이 넘은 지금, 오우라 천주당은 세계유산이 되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가사키 항구를 오가는 정기선,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울창한 나무들.

아침 일찍 오란다자카 언덕길을 걸으면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오우라 천주당에서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돌길을 따라가다 보면 좁은 골목으로 헤매듯 들어서게 된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묘교지 절의 문과 오우라 스와 신사의 도리이다.

신사 불각과 교회가 이웃한 ‘기도의 삼각지대’에 서면 각자의 기도를 존중하고 서로 인정하는 관용의 마음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문화를 수용해 온 나가사키의 기질 그 자체일 것이다.

저녁이 되면 청초한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교회의 종, 절의 종, 항구에서 메아리치는 뱃고동 소리.

이곳이 어느 나라인지조차 알 수 없을 것 같다.

나가사키는 언덕의 도시이기도 하다.

미나미야마테 언덕으로 이어지는 기넨자카의 돌계단을 오르면 조망이 아름다운 오우라 전망공원에 다다른다.

이 언덕에는 서양식 주택이 집중된 그래버원과 교회가 보존·관리되어 외국인의 생활했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히가시야마테 언덕으로 눈을 돌리면 거류지 시대부터 이어 온 미션스쿨,
각국 영사관 유적 등 서양식 건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더위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하는 9월.

그래버원을 비롯한 거류지 일대에서 ‘나가사키 거류지 축제’가 개최된다.

테마는 ‘사람 마을 세계 거류지를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하여 세계로 이어진다’.

거류지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이 집행위원이 되어 역사와 경관을 살린 마을 조성에 이어지도록 시작된 행사이다.

나가사키의 발전과 근대화에 온 힘을 기울인 무역 상인 토마스·그래버의 현창식이나, 그래버 언덕 오르기 대회, 밤에는 거류지의 음식점들을 걸어 다니면서 먹고 마시는 등 행사가 있어 매년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건물의 역사, 선인의 삶의 모습, 경관의 아름다움. 모든 것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유산이다.
이 이벤트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거류지에 대한 사랑. 그 가치를 이해하고 전달하려는 마음이다.

“거류지는 꿈을 가진 외국인들이 이주해 도전하는 곳이었기에 젊은 사람들의 도전 무대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는 집행위원장은 젊은 사람이 이 지역에 관심를 가져 새로운 미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국인이 살던 서양식 주택을 카페로 재활용하는 청년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땅에 옛 민가를 재생시켜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이주자,

거류지의 오랜 역사를 지켜봐 온 옛 수도원을 호텔로 탈바꿈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거류지의 옛날과 지금을 안내해 주는 자원봉사 가이드.

남아있는 건물들은 그곳에 살았던 선인들의 역사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국제 교류의 거점으로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소중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웃을 생각하는 경건한 기도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바람도, 변함없는 풍경도 지금 사는 사람들의 손에 계승되어 살아 숨 쉬고 있다.

매달 마지막 목요일, 나가사키 거류지의 일각에 있는 회의실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역 주민이나 역사적 건조물의 소유자, 관광 시설의 관리자, 교육 관계자, 행정 관계자 등이 모이는 나가사키 거류지 역사 마을 조성 협의회 모임이다.

나가사키 거류지에 관련된 다양한 멤버가 서로 배우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냉정하게 이 마을의 미래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협의회와 행정이 힘을 합쳐 책정한 나가사키 거류지 역사 마을 그랜드 디자인과 실행 계획은 마을 조성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바이블이다.

이 지역의 역사를 살린 마을 조성 활동이 미래의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역사 도시 조성

전국 각지에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성과 신사 불각이 있으며, 그 주변 시가지에는 선인들이 형성한 마치야와 무가 저택 등 역사적인 거리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한 지역에서는 축제나 전통 행사 등 옛사람들의 삶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역사적인 거리 모습과 일체가 되어 고유의 운치와 정서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풍치를 우리는 지키고 가꾸어 후세에 계승해 나갈 필요가 있다.

나가사키시는 오래전부터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독자적인 역사 문화를 키워 왔다. 에도막부 말기 이후는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발자취를 지금까지 전해주는 지역의 자산을 지켜나가기 위해 2020년 나가사키시는 ‘역사 도시 조성 계획’을 책정해 국가의 인정을 받아 관계 부처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민과 행정이 협동한 도시 조성에 힘쓰고 있다.

이국정서나 문화·시대의 혼성을 짙게 나타내는 나가사키 거류지의 역사·문화를 담은 ‘히가시야마테·미나미야마테 구역’도 그중의 하나. 역사적 자산을 활용한 번화와 삶이 공생할 수 있는 도시 조성을 추진하여 거류지로서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있다.

나가사키 거류지의 해외 교류로 보는 역사적 풍치

나가사키시 미나미야마테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나가사키만이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좋은 언덕 위에 자리한 오우라강 좌안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구릉, 그 북쪽으로는 오우라 천주당 등의 교회 시설이 있고 그곳에서 언덕 위로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에 걸친 거류지 시대 초기 무렵에 지어진 구 그래버 주택을 비롯한 서양식 주택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또한, 나가사키 항의 해안가에는 과거 세관과 은행이었던 건물들이 바다를 마주하고 세워져 있다.
지구 내는 거류지 시대의 토지 구획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도 한적한 주택지 내에는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중기에 걸친 서양식 주택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이국정서를 느낄 수 있는 거리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91년 4월 나가사키시 히가시야마테·미나미야마테 지구는 국가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

  1. 1.구 그래버 주택

    안세이 6년(1859) 9월 상하이에서 나가사키로 와 그래버 상회를 설립하고 무역에 종사한 영국인 토마스 블레이크 그래버가 접객용으로 지은 목조 양옥.

    목수의 묵서로 분큐 3년(1863)의 건축임이 확인되어 목조 양옥으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

    도편수는 오우라 천주당 등을 도급한 아마쿠사의 고야마 히데였다고 추정된다.

    미나미야마테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내에 위치한 그래버원에는 같은 시기의 무역 상인 저택으로서 옛 링거 저택, 옛 오르토 저택(모두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도 이축 복원되었다.

  2. 2.오우라 스와 신사

    오우라 천주당, 묘교지 절과 함께 기도의 삼각지대를 구성하는 신사.

    창건은 덴쇼 연간(1573~1592)이라고도 오무라 번주 오무라 스미나가가 겐로쿠 6년(1693)에 신전을 건립한 것이 시초라고도 한다.

    오우라 스와 신사의 대제 ‘오우라 군치’는 메이지 시대부터 계속되는 중요한 전통 행사이다.

  3. 3.묘교지 절

    오우라 천주당, 오우라 스와 신사와 함께 기도의 삼각지대를 구성하는 절.

    거류지가 있었던 당초, 영국 영사관 건물이 지어지기 전까지 경내 일각이 영국 영사관 임시 사무소로 충당되어 초대 영사 모리슨이 근무했다.

    거류지를 조성하기 이전부터 야마테 언덕에 위치한 사찰이다.

  4. 4.오우라 국제 묘지

    막부 말기, 각국 영사의 요망으로 분큐 원년(1861), 오우라 외국인 거류지의 인근(현재의 가와카미마치)에 국제 묘지가 설치되었다. 판독할 수 있는 묘비 중 가장 오래된 연대는 설치 당시인 1861년이다. 이곳에 매장된 대부분 사람은 선원이었다. 묘지는 구획 증설도 이루어져 비좁아진 1880년대 후반까지 거류 외국인들이 공용하였다. 거류지의 거리 모습과 함께 당시 거류지에서의 사람들의 활동을 알아볼 수 있는 장소이다.

  5. 5.구 홍콩 상하이 은행 나가사키 지점 기념관

    메이지 37년(1904)에 준공된 이 건물은 메이지~쇼와 초기 건축계의 위대한 인재 시모다 기쿠타로가 설계한 현존하는 유일한 유구로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이다.

    나가사키 시내 양옥 군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며 벽돌 및 석조 3층 건물로 1층 부분을 연속 아치 아케이드로 하고 2, 3층 부분을 코린트 양식의 원형 기둥이 관통한 대 오더로 그 위에 삼각 파풍 지붕을 올리는 등 바다 측의 정면성을 중시한 디자인이다.

    홍콩 상하이 은행 나가사키 지점은 당시 고베 서쪽의 유일한 외국 은행으로 재류 외국인, 그중에서도 무역상을 주된 거래처로 하는 외환이나 런던·상하이·홍콩의 외화 매매를 주요 업무로 한 특수 환은행이었다.

  6. 6.구 나가사키 세관 사가리마쓰 파출소

    나가사키 항은 쇄국 시대에도 일본의 유일한 외국과의 창구로서 열려 있었으나, 개국 후에도 무역항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세관이 설치되었다.

    이 파출소 건물은 메이지 31년(1898)에 신축되었다. 청사는 정면이 바다를 향해서 세워진 벽돌로 된 단층 건물로 정면 양단에 삼각 파풍을 설치한 단정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부지를 둘러싼 벽돌담과 함께 남겨져 메이지 시대 세관 시설의 상황을 잘 전달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해안 거리 경관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가사키시 히가시야마테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초기에는 포르투갈, 미국 등 각국 영사관과 예배당이 들어서 당시에는 영사관 언덕으로도 불렸다.

그 후, 이들 철거지에 미션계 학교가 증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구 내의 서양식 건축물은 걸침기와를 올리고 외벽은 미늘 판자벽에 페인트칠한 것이 많고, 바다 방향으로 개방적인 베란다를 설치하여 주요한 방을 배치하고 있다.

영사관이나 학교, 주택 등 용도가 다양한 건물이 남아 언덕의 돌길이나 돌담, 돌도랑, 석표주 등 거류지에 만들어진 거리 모습이 펼쳐진다.

1991년 4월 나가사키시 히가시야마테·미나미야마테 지구는 국가의 중요 전통적인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

  1. 7.히가시야마테 서양식 주택군

    이 7개 동의 양옥 군은 메이지 20년대 후반 무렵에 함께 건설되었다.

    건물은 전반적으로 공통되는 점이 많지만, 특징으로는 내외 모두 디자인·마감이 검소하고, 의양풍 건축인 점, 구조 재료가 각 동이 거의 동일한 점, 특히 상단의 2개 동은 평면 입면 모두 흡사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택 또는 임대 주택 등으로 계획적으로 건설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용도의 주택 유구가 군집하여 남아있는 것은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또한, 히가시야마테의 경관상 특이한 존재여서 귀중하다.

  2. 8.히가시야마테 12번관

    히가시야마테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지구 내에 있으며 메이지 원년(1868)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서양식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히가시야마테 지구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구이다.

    정면 쪽의 3면에 이르는 폭 넓은 베란다가 있는 주 건물과, 배후의 부속 건물 및 별채로 이루어진 위풍당당한 구조로, 중앙 복도형 평면 구성도 당시 영사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외벽의 미늘 판자벽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이기도 하다.

    현재는 갓스이 학원 등을 비롯한 나가사키 거류지에 개교된 미션스쿨의 역사를 전하는 자료관으로 널리 공개되고 있다. 갓스이 여자대학 학원제에서는 학생들이 행사 등을 진행하는 장소로 붐비고 있다.

  3. 9.히가시야마테 13번관

    메이지 중기 히가시야마테의 외국인 거류지에 건축된 양옥으로 최초의 거주자는 홍콩 상하이 은행 나가사키 지점 초대 에이전트인 앤더슨.

    비교적 규모가 크고 각 거실의 크기가 규격화되어 단순한 공간 구성이 특징이며 메이지 중기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서양식 임대 주택으로서 귀중하다.

    현재는 1층에 카페 공간, 2층에는 당시 주민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있어 관광 휴식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4. 10.오란다자카
  5. 11.구 나가사키 영국 영사관

    안세이 5년(1858), 여러 나라와의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나가사키는 개항장으로서 자유무역을 개시하고 외교 사무가 시작되었다.

    히가시야마테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지구 내에 있는 이 건물은 영국 영사관으로서 상하이의 영국 기사 윌리엄·코완의 설계에 근거해 나가사키시 오우라마치의 고토 가메타로가 시공하여 메이지 41년(1908)에 완성했다.

    메이지 후반기의 서양식 건축으로서 조형·의장 면에서도 역사적 및 경관상 귀중할 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 외교사의 일단을 보여주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영사관은 쇼와 16년(1941)경에 폐쇄되어 전후에 나가사키시가 취득해 과학관이나 미술관으로 사용되어 지역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다.

  6. 12.이케가미 가문 주택

    메이지 20년대 무렵에 건설된 목조 2층 서양식 주택.

    당초, 영국 무역상의 주택으로서 건설되어 그 후, 홈·링거 상회의 외국인 사택이 되었고, 그것을 같은 상회에 근무하고 있던 일본인이 양도받았다고 한다.

    외벽은 미늘 판자벽으로 된 서양식 건축이며 평면은 중앙에 복도와 계단이 있는 현관을 두고 좌우 대칭으로 거실을 배치하는 형식이다. 2층은 전면에 베란다를 마련하는 등 나가사키 거류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오우라 지구의 평지 부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거류지 시대의 주택이다.

  7. 13.일본기독교단 나가사키교회

    목조 2층 교회로 다이쇼 14년(1925) 10월 22일 자 신문에 교회 준공 기사가 실렸으며 정면 사진을 통해 현재의 외관과 변함없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건물 정면의 마감은 다이쇼 시기에 보급된 ‘독일 벽’이다.

    외관, 인테리어 모두 장식을 최소화한 단순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은 개혁파(개신교) 교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헤이세이 27년(2015)에 경관 중요 건조물로 지정되었다.